취미/독서

베스트셀러 책 "도파민네이션" 리뷰 후기

AICO 2023. 9. 1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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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보문고

 

 

 

 

안녕하세요, aico입니다.

 

얼마 전 도서 《도파민네이션》을 읽었어요.

스탠퍼드대학교의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인 애나 렘키 박사가 쓴 책입니다.

 

 

 

현대사회는 자극적이고 중독력이 강한 것이 상당히 많죠.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고,

하루 종일 유튜브나 SNS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어요.

 

이런 환경은 우리의 뇌를 도파민에 중독되게 만들었고

자연 상태의 뇌가 갖던 회복 능력을 잃게 됩니다.

 

 

 

책 《도파민네이션》은 도파민 과잉 시대에서

건강한 정신을 갖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에요.

 

 

뇌와 관련된 내용이지만 어려운 내용은 없었고요,

일반인들도 읽기 쉽게끔 쉬운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준 책이에요.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분들,

sns나 유튜브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분들이라면

도파민네이션 책을 읽어보시고

우리 뇌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를 이해하시면

자기계발에 더욱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책 내용 메모

 

 

 

 

[저울의 교훈]

1. 끊임없는 쾌락 추구(그리고 고통 회피)는 고통을 낳는다.

2. 회복은 절제로부터 시작된다.

3. 절제는 뇌의 보상 경로를 다시 제자리에 맞추고, 이를 통해 더 단순한 쾌락에도 기뻐할 수 있도록 한다.

4. 자기 구속은 욕구과 소비 사이에 말 그대로 초인지적 공간을 만드는데, 이 공간은 도파민으로 과부하를 이룬 지금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5. 약물 치료는 항상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로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잃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6. 고통 쪽을 자극하면 우리의 평형 상태는 쾌락 쪽으로 다시 맞춰진다.

7. 그러나 고통에 중독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근본적인 솔직함은 의식을 고취하고, 친밀감을 높이며, 마음감짐을 여유있게 만든다.

9. 친사회적 수치심은 우리가 인간의 무리에 속해 있음을 확인시킨다.

10.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세상에 몰입함으로써 탈출구를 찾을 수 있다.

 

 

 

 

 소피라는 환자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인스타그램 하기, 유튜브 보기, 팟캐스트와 플레이리스트 듣기 등 일종의 기기에 의존한 상태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수업을 받으러 걸어가면서 아무것도 듣지 말고 생각이 수면 위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제가 왜요?" 그녀가 물었다.

 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게 자신과 친해지는 방법이거든요. 자신의 경험을 통제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펼치는 거죠. 전자 기기만 붙잡고 지내는 게 소피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키우고 있을 거예요. 매번 자신을 피하는 건 정말 지치는 일이죠. 소피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경험하는 일이 새로운 생각과 기분을 갖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세상과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게 할 거예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건 너무 지루하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죠, 맞는 말이에요. 지루함이란 지루하기만 한 게 아니에요. 끔직할 수도 있죠. 뭔가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더 큰 문제 앞에 우리를 떠밀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루함은 발견과 발명의 기회가 되기도 해요. 새로운 생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공간을 만들죠. 그게 없으면 우리는 주변 자극에만 끊임없이 반응하게 될 거예요."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어떤 사람은 약물을 복용하고, 어떤 사람은 방에 숨어서 넷플릭스를 몰아본다. 또 어떤 사람은 밤새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 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생략)

 왜, 우리는 전에 없던 부와 자유를 누리고 기술적 진보, 의학적 진보와 함께 살아가면서 과거보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워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모두 너무나 비참한 이유는, 그런 비참함을 피하려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저울은 비유일 뿐]

 우리 뇌에서 벌어지는 쾌락과 고통의 줄다리기는 저울의 원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모두가 수평 저울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우울감, 불안감, 만성 통증을 느끼는 사람은 고통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에서 출발하는데, 이것은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이 중독에 더 취약한 이유를 설명할지도 모른다.

 

1.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다친 병사들을 관찰한 결과,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당한 병사들 가운데 3/4이 부상 직후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 그들의 신체적 고통이 피곤함, 불편함, 불안함, 공포감, 실제 사망 위험 등으로 가득 찬 극도의 위험한 환경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 때문에 누그러진 것. 그들의 고통이 안전한 병원으로 가는 티켓이었기 때문.

 

2.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어느 29세 건설 노동자의 사례. 당시 그는 15센티미터 못을 그대로 위에서 밟아서 응급실로 갔는데, 그 못은 가죽, 피부, 뼈를 뚫고 공사용 부츠 위로 튀어나와 있어 보였다. 못이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스러워서, 그는 펜타닐과 미다졸람을 투여받았다.

→ 하지만 못을 뽑아내고 부츠를 벗겨보니, 못이 발가락 사이를 절묘하게 피해가서 발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과학은 모든 쾌락에는 대가가 따르고,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그 원인이 된 쾌락보다 더 오래 가며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진다.

 (생략)

 인간은 궁극적인 추구자다. 쾌락을 좇고 고통을 피하는 세상의 시험에 너무나 잘 대응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세상을 결핍의 공간에서 지나치게 풍족한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이 풍요로운 세상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톰 피누케인 박사는 이를 두고 "인간은 열대우림의 선인장입니다"라고 말했다. 건조기후에 살아가는 선인장이 열대우림에 던져진 것처럼 우리는 과도한 도파민에 둘러싸인 환경에 살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우리는 더 많은 보상을 얻어야 쾌감을 느끼고, 상처가 덜하더라도 고통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새로운 생태계에서 잘 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해답을 중독자들이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 강박적 과용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은 중독에 가장 취약한 사람, 즉 중독과 싸우는 이들이다. 오랫동안 여러 문화에서 타락한 자, 기생하는 자, 버림받은 자, 부도덕한 자로서 소외당해온 중독자들은 지금 시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지혜를 다져 왔다.

 

 

 

 

요즘은 사방에서 도파민이 넘쳐난다. 그래서 우리는 즉각적인 만족에 길들어져 있다. 우리는 뭔가를 사고 싶으면, 그다음 날 문간에 그게 떡 하니 놓여 있다. 우리가 뭔가를 알고 싶으면, 곧바로 화면에 답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알아내거나, 답을 찾는 동안 좌절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걸 기다려야 하는 습관을 잃고 있다.

 

 

 

[범주적 자기 구속]

 범주적 자기 구속은 도파민을 여러 범주로 나누어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허락하는 하위 유형, 그리고 허락하지 않는 하위 유형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는 중독 대상뿐 아니라 그 대상을 갈구하게 만드는 계기도 금지하는 방식이다.

 ex. 스포츠 도박 중독자가 피해야 하는 것: TV 스포츠 경기 보기, 신문 스포츠면 읽기, 스포츠 관련 인터넷 사이트, 스포츠 관련 라디오 + 카지노에 연락해 입장 불가 명단에 자기 이름 넣기

 ex. 금지된 성적 집단에 엮이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신체를 숨기는 일은 오랫동안 많은 문화적 전통의 일부로 기능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쿠란에서는 여성의 정숙을 이렇게 논한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여자에게 시선을 밑으로 깔고, 은밀한 부위를 보호하며, 꾸민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 머리 덮개로 가슴을 감싸고, 꾸민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이야기하라."

 

 

 

 

향정신성 약물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단기적으로 완화하는 것을 넘어서 감정 자체를 제한한다. 비탄과 경외심 같은 강렬한 감정을 특히 무디게 한다.

 어떤 환자는 항우울제 덕분에 조울증의 고통에서 해방됐다고 기뻐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올림픽 광고를 보고도 더 이상 울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격 중 감성적인 부분을 기꺼이 희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울 수 없자 나를 다시 찾아왔다. 내 처방에 따라 그녀는 항우울제를 끊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우울과 불안을 비롯해 상대적으로 더 넓은 폭의 감정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녀는 바닥에 가까운 감정도 인간다움을 느끼게 하기에 가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담당한 또 다른 환자는 만성 통증 때문에 옥시콘틴을 10년 넘게 다량 복용해왔다. 상담을 통해 양을 점점 줄여나갔는데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남편이 말했다. "내 아내는 옥시콘틴을 먹으면 음악을 안 들었어요. 그 약을 끊은 지금은 다시 음악을 즐깁니다. 저로서는 제가 결혼했던 바로 그 사람을 되찾은 기분이에요."

 

 

 

 

[솔직함이 관계를 개선한다]

 있는 그대로 말하기는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자신의 약점을 서슴없이 드러낼 때 특히 그렇다. 이는 반직관적이다. 우리는 자신의 바람직하지 못한 면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떠나갈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내 성격적 결함이나 일탈 행위를 알면 거리를 둔다는 게 논리적으로는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솔직할수록 사람들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당신의 엉망인 모습을 통해 자신의 약점과 됨됨이를 돌아보고 의심, 두려움, 나약함이 자신만의 약점이 아님을 알게 되면 안심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상호 간의 솔직함은 수치심을 없애는 동시에 친밀감을 길러준다. 우리가 결점을 갖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때, 그들과 나누는 깊은 유대감에서 이러한 따뜻한 감정이 커진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친밀감을 만드는 방법은 완벽함이 아니다. 실수를 바로잡는 데 다 같이 노력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가 친밀감을 높인다.

 

 

 

 

 나의 심리치료 지도교수이자 스승은 내게 AA의 12단계를 활용해 엄마를 향한 분노를 없애 보라고 권유했다. 나는 이전에도 수년 동안 엄마와의 관계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바란 어머니상이 아니었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노력하면 할수록 나의 분노는 커지기만 했던 것 같다.

 나는 그와 함께 12단계를 밟아 나갔다. 생전 처음으로 나는 엄마가 나를 실망시켰다고 여긴 방식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내가 원인 제공자일 수 있다는 점을 직시했다. 어린 시절에는 내 책임은 적었기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 사건보다 최근 사례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내가 엄마와의 갈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봐도 나는 힘없는 피해자 같았다. 그러나 차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자 다른 그림이 펼쳐졌다. 다른 형제자매나 손주들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비해, 내가 사는 집으로 나를 보러 오거나 내 남편이나 아이들과 친해지길 꺼리는 엄마의 태도에만 집착했다. 그녀가 무능력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나의 인식, 그리고 그녀가 나를 다른 누군가이길―더 다정하고, 더 고분고분하며, 더 겸손하고, 고집이 덜 하며, 더 재미있는 누군가이길―바란다는 내 느낌이 나를 화나게 했다.

 다음으로 나의 성격적 단점과 그 단점들이 엄마와 나와의 껄끄러운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종이 위에 적어보았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이제껏 보지 못했던 진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스킬로스의 말처럼 "우리는 고통받아야 한다, 진실로부터 고통받아야 한다."

 (생략)

 엄마가 현실과 다른 나의 모습을 바란다고 내가 분개한 일에 대해 말하자면, 나도 그녀에게 똑같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충격적일 만큼 명확히 깨달았다. 나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테레사 수녀처럼 갑자기 우리 집에 나타나 내 남편과 아이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를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보살펴 주기를 바랐다.

 나는 엄마와 할머니라면 꼭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이상적인 모습으로 엄마가 살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단점만 보았지 엄마의 좋은 특징은 전혀 보지 못했다. 그녀는 재능있는 예술가다. 매력적이다. 재미있고 엉뚱한 면이 있다. 비판받거나 외면당한다고 느끼지 않는 이상 따뜻한 마음씨와 베풀 줄 아는 본성을 갖고 있다.

 각 단계를 거친 후, 나는 나와 엄마의 관계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자 화가 사라졌다. 나는 엄마를 향한 분노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놨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이 치유되면서 나와 엄마의 관계는 예전보다 좋아졌다. 나는 그녀에게 덜 바라고, 더 관대하며, 덜 비판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또한 나는 우리의 마찰을 통해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와 더 사이좋게 지냈더라면 겪지 않았을 법한 상황에서 회복력과 자립심을 배울 수 있었다.

 

 

 

 

 내 환자인 마리아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회복은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가 가로등 기둥을 밝히면서 어두운 골목을 걸어 내려갈 때의 장면과 비슷해요. 그가 골목 끝에서 발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봐야 골목 전체에 불이 들어온 광경이 보이죠. 그가 지나온 길의 빛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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