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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소품집 리뷰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AICO 2024. 3. 3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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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얼마 전 읽은 책인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리뷰 글입니다!

 

이 책은 박제헌 번역가 님이 엮은 쇼펜하우어 소품집이에요.

 

약 200년 전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의 작품들을 몇 개 모아놓은 것인데요, 지금 읽어도 배울 점이 많은 내용이더라고요.

 

삶의 진리에 대해 얘기하는 쇼펜하우어 어록들은 힘든 현실 상황일 때 읽으면 힘이 될 만한 구절이 참 많았어요.

 

물론 현시대와는 잘 맞지 않는 쇼펜하우어의 편견이 담긴 내용도 있었어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든지, 여성 성차별 등에 대한 내용도 있으니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래는 책의 내용을 개인적인 메모 목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인간의 운명의 차이를 만드는 세 가지]

1. 개인의 본질: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인격이다. 여기에는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적 특성, 지능과 교육 수준이 포함된다.

2. 개인의 소유물: 모든 범위 내에서 재산이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것들.

3. 개인의 외면: 이 단어 속에는 익히 타인의 생각, 즉 인간이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이 들어 있다. 개인의 견해에 따라 이것은 명예, 지위, 평판으로 세분된다.

 

1번은 인간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다른 두 가지보다 더 본질적이다. 자연이 인간의 행복과 불행에 관여하는 바는 단순히 인간이 규정한 소유물이나 생각 같은 규정에서 나타나는 차이보다 크기 때문이다. 위대한 정신이나 마음가짐을 지닌 진정한 인격적 우수성은 지위, 출생 신분, 심지어 고귀한 왕가의 핏줄이나 부유함에 견줄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각자의 견해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이 견해에 따라서 사람은 세상을 불행하게 바라볼 수도, 진부하고 단조롭게 바라볼 수도, 또는 풍요롭고 재미있으며 유의미하게 인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겪은 흥미로운 사건을 질투한다. 하지만 이 경우 오히려 자신이 경험한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재미있게 묘사할 줄 아는 타인의 이해력을 탐내야 한다. 재치 있는 사람은 똑같은 사건이라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지만, 평범한 두뇌를 소유한 자는 고리타분한 일상의 한 단면으로만 생각한다. 우매한 독자는 시인이 겪은 매력적인 순간이 부러울 뿐, 완전히 평범한 사건을 위대하고 아름다운 순간으로 그려낸 시인의 대단한 상상력은 부러워하지 않는다.

 

 

 

 무대에서 누군가는 영주, 누군가는 자문가, 또 다른 누군가는 신하, 군인이나 장군 역할을 한다고 가정하자. 이들의 차이는 그저 겉모습에 불과하다. 외관을 파고들어 핵심에 다다르면 누구나 고통과 빈곤에 시달리는 희극인인 점은 매한가지다.

 인생도 이와 같다. 지위와 재산이 개인적 역할에 차이를 만들지만, 그 역할이 내적인 행복이나 즐거움을 좌우하진 않는다. 사람마다 고통과 빈곤의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그 질은 거의 같다. 어느 정도 본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처한 상황이나 재산 수준에 따른 역할의 차이는 행복을 좌우하는 전부가 될 수 없다.

 

 

 

 총명한 사람은 온전히 홀로 있을 때조차 자신만의 생각과 상상만으로 큰 즐거움을 얻는다. 반면에 아둔한 자는 아무리 사교 활동, 연극, 유흥거리를 즐겨도 고통스러운 권태로움을 피할 도리가 없다. 선하고 절제하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는 환경이 곤궁해도 만족을 찾는다. 하지만 탐욕스럽고 남을 시기하는 악한 사람은 아무리 부자여도 만족을 모른다. 하지만 비범하고 뛰어난 정신을 지닌 인격을 추구하는 자는 대다수 사람이 좇는 향락을 번거롭고 성가시다고 생각한다.

 

 

 

 재능을 타고난 인간이 외부 환경 탓으로 앉아서 하는 일, 즉 사소하고 귀찮은 소일거리에 종사하거나 그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요구하는 연구와 정신노동을 하느라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그는 한평생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지적 능력이 아주 탁월한 인간이 자신의 능력이 필요치 않는 보잘것없는 일이나 힘에 부치는 육체노동을 하느라 자기 능력을 개발하거나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는 더욱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끼리 만나 맨 먼저 서로의 건강 상태를 묻고 평안을 비는 일은 그냥 하는 행위가 아니다. 인간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건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건강을 제물 삼아 이득, 승진, 지식, 명예 나아가 성적 충동과 순간의 향락을 맞바꾸는 짓은 어리석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건강을 가장 중요시해야 한다.

 이처럼 건강이 우리의 행복에 필수적인 쾌활함의 기반이 되지만, 쾌활함은 오로지 건강에만 달려 있지 않다. 완벽하게 건강한 상태에서도 우울한 기질이나 침울한 기분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울한 기질이나 침울한 기분의 궁극적 원인은 생명체의 본질에 있는 변하지 않는 성질, 즉 자극과 재생 능력을 좌우하는 감수성의 상태에 있다.

 

 

 

 짜증 나는 사람, 즉 음울하고 불안한 성격을 가진 자는 쾌활하고 긍정적인 사람에 비해 대체로 상상 속에서 재난과 고통을 자주 겪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드물게 일어난다.

 그 이유는 만사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언제나 최악의 결과를 두려워하며 적절하게 대비하는 사람은 사물의 밝은 면만 보고 희망을 품는 사람보다 오판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경계와 소화기관 계통의 질환을 타고난 짜증 나는 사람은 어려움이 생기면 끝없는 불쾌감에 빠져 염세적으로 바뀌고 결국 자살 위험을 높이고 만다. 그러면 아주 사소한 불쾌감을 주는 일을 경험해도 자살 충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건강과 부분적으로 유사한 것은 아름다움이다. 이런 아름다움이라는 주관적 장점은 직접 우리의 행복에 작용하진 않고, 타인에게 주는 인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작용한다. 그래도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아주 중요하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개 추천서나 다름없다.

 

 

 

 인간의 행복에 방해가 되는 요소는 고통과 지루함이다. 이 두 적 중에 하나에서 멀어지면, 다른 하나와 가까워진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크고 작은 진폭은 있겠지만, 결국 고통과 지루함을 오가는 움직임 사이에 있다. 외적으로는 빈곤과 결핍은 고통을 낳고, 안전과 과잉은 지루함을 낳는다. 이에 따라 객관적으로 빈곤, 즉 고통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하층 계급을 목격한다. 그에 반해 부유하고 고귀한 계급은 지루함을 상대로 필사의 싸움을 벌인다.

 

 

 

 정신의 둔감함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얼굴에 내면의 공허가 드러난다. 지루함의 원천인 내면의 공허함은 계속해서 외부의 자극을 갈구하도록 정신과 마음을 움직인다. 이때 어떤 자극을 선택하는지는 그리 까다로운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나 때우는 저급한 일이나, 온갖 사회 활동, 오락, 유흥, 사치를 갈만하는 일은 시간 낭비이자 비참해지는 길이다.

 이런 비참함을 막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내면의 풍요, 즉 정신의 풍요다. 정신이 풍요로워지면 지루함이 설 자리가 없다. 정신이 풍요로운 자는 무한히 활발한 사고 활동,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운 현상으로 새로워지는 지적 유희와 힘, 그 힘을 항상 다른 것과 조합하려는 의욕들에 차 있다. 이들의 비상한 두뇌는 찰나의 권태 이외에는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이 같은 고도의 지능은 직접적인 조건으로 높은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 조건은 격렬한 의지, 즉 열정에 근본을 두고 있다. 이런 조건과 결합된 사람의 감정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예민하므로 정신과 육체적 고통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상당한 조급함을 보이거나 사소한 장애물까지도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그들의 강력한 상상력은 모든 생각을 왕성하게 만드는데, 여기에는 불쾌한 상상까지도 포함된다.

 재치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고통과 근심이 없고 안정과 여유를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다 결국 고요하고 겸손하면서도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이런 사람은 타인과 어느 정도 친교를 맺은 뒤 위대한 정신을 위해 은둔하고 나아가 고독해지는 길을 택한다. 정신적으로 가진 것이 많을수록 외부에서 필요한 게 적고, 그렇게 생긴 시간적 여유 속에서 온전히 자신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정신이 탁월한 자는 그리 사교적이지 않다. 멍청함의 극단에 있는 사람은 궁핍에서 겨우 벗어나 한숨 돌리기 무섭게 오락거리와 사교 모임을 찾아 나선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든 관계없이 그곳에 안주하길 원한다. 누구나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고독한 상태에서는 본래 자신이 지닌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카드놀이를 부당하게만 여기고 싶지는 않다. 이 놀이는 세상살이와 사업 경영에 필요한 예행연습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상황(카드)에서 현명하게 목적을 달성하려고 어떻게든 침착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연습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카드놀이가 풍기를 문란케 하는 악영향을 끼친다. 카드놀이에 담긴 정신은 온갖 계략과 술책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이다. 이런 식의 놀이 습관이 뿌리를 내려 실생활을 잠식하면 내 것과 네 것을 다툴 때도 카드놀이 방식을 취한다. 그러면 합법적 범위 내에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자신에게 이익만 남기면 된다고 생각해 버린다.

 

 

 

 가장 좋은 것은 자기 자신에게 줘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이 많을수록, 향락의 원천을 자신 안에서 찾을수록 행복해진다.

 외적인 조건은 언제나 손에 닿는 거리에 있진 않으므로 이런 상황을 피할 도리는 없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 외적인 조건은 필연적으로 고갈된다. 나이를 먹으면 사랑, 유머 감각, 여행으로 들뜨는 마음, 승마에 대한 애정도 사라져 사교계에도 적합한 인물이 되지 못한다. 심지어 친구와 친척들도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럴 때는 이전보다 더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것이 나를 가장 오래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진정한 행복의 유일하고도 변치 않는 원천이 된다.

 그러니 탁월하고 풍부한 인격, 특히 충만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운명을 타고났다. 

 반면에 평범한 인간은 특히 인생의 향락에 관해서는 자기 외부에 있는 것, 즉 재산, 지위, 부인과 자식, 친구, 사교 모임 등에 기댄다. 이것들이 자기 인생의 행복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외부의 것을 잃거나 그것들에 기만당했다고 느끼면 절망한다. 이런 관계에서는 무게 중심이 인간의 외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인간은 끊임없이 다른 것을 바라고 변덕스럽게 군다. 재력만 있다면 별장과 말을 사고, 파티를 열고, 여행을 떠나는 등 엄청난 사치를 부리는 이유는 외부에서 만족을 찾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10권 7장에서 '행복은 여가에서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도 소크라테스는 여가를 모든 소유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칭송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여가를 갖는 것은 인간의 평범한 운명이나 그의 평범한 본성과도 거리가 멀다.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숙명이기 때문이다.  

 

 

 

 모든 속물의 가장 큰 고통은 이상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현실만 맴돌며 지루함을 벗어나고자 애쓴다는 점이다. 그런데 현실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는 면이 있으므로 즐기기는커녕 지쳐버리고 온갖 재앙을 떠안는다. 이에 반해 이상은 무궁무진하며 그 자체로 순수하고 해가 없다.

 

 

 

자신의 운명을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라.

 

 

 

 행복론을 가르친 위대한 스승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구를 세 종류로 나누었는데 이는 아주 적절하고 훌륭하다.

1.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욕구

- 이 욕구를 충족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워진다.

- 음식과 의복만이 해당하며 이를 충족하기란 아주 쉽다.

2. 자연스럽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욕구

- 성적 만족에 대한 욕구

- 첫째 욕구보다 충족하기 더 힘들다.

3. 자연스럽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구

- 사치, 호화, 화려하고, 빛나는 것들

- 이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고 충족시키기도 매우 어렵다.

 

 

 

나 자신의 가치와 외부의 평가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의 현실 모습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행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가진 자원이 아주 빈약한다. 인간의 안녕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강이고, 건강 다음은 생존 유지 수단, 즉 걱정 없이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명예, 영화, 지위, 명성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들은 앞서 말한 인간의 본질에 중요한 자산을 대체하거나 그 자산의 경쟁 상대가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본질적 자산을 위해서 명예, 영화, 지위, 명성을 주저 없이 포기할 필요도 있다. 그러니 모든 인간이 각자의 현실과 개인의 상태에 따라 자신만의 세상에서 산다는 통찰을 얻으면 행복해진다.

 '명예가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곧 '생존과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없다. 더군다나 대부분 상황에서 타인의 견해는 현실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적고, 심지어 비호의적이기까지 하다. 꼬인 마음으로 내뱉는 언사와 어조에 귀 기울인다면 병들고 짜증이 날 것이다. 게다가 명예 자체도 실제로는 간접적인 가치만 있을 뿐 직접적인 가치는 없다.

 이런 인식 과정을 거치면 인간이 공통으로 가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평정심과 쾌활함이 증대되어 더 확고하고 확신에 찬 태도를 보이고, 행동은 솔직하고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은둔하는 생활 방식이 마음의 평화에 아주 유익한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휘둘릴 필요가 없어져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 중에서 가장 값싼 종류의 자부심은 민족적 자부심이다. 민족적 자부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개인적으로 내세울 만한 장점이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수백만 명과 공유하는 자부심을 내세울 리가 없다. 뛰어난 개인적 장점이 있는 사람은 자기 민족의 결점을 가장 분명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세상에 자랑할 게 없는 한심한 멍청이는 자기가 속한 민족에게 느끼는 자부심을 최후의 보루로 삼는다. 이런 식으로 그는 생기를 찾고 자기 민족의 온갖 결점과 어리석음을 필사적으로 옹호하고자 한다.

 

 

 

너는 신경 쓰지 마라. 모든 것에 둔감한 반응을 보이니.

좋은 기분을 잃지 마라!

늪에 던진 돌은

파문을 일으키지 않는다.

-괴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에서 말한 문장이 인생의 지혜를 말하는 최고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현명한 자는 즐거운 것을 추구하지 않고 고통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 이 문장을 독일어로는 '이성적인 사람은 향락이 아닌 고통 없음을 추구한다'고 번역할 수 있다. 이 문장은 모든 향락과 행복이 부정적인 성질을 가졌지만, 고통은 긍정적인 성질을 갖는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인간은 전신이 건강한데 몸 한 곳에 상처를 입었거나 그밖에 아픈 곳이 있으면 전신의 건강은 의식에 들어오지 않고, 다친 곳의 고통에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며 생명력이 주는 만족이 상쇄되어 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도 자기 의도에 어긋난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머리에 맴돈다. 인간은 그런 것을 자주 생각하는 반면에 뜻대로 진행되는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의 소유물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아무것도 아니니.

세상 전부를 다 가졌다 해도

기뻐하지 마라, 아무것도 아니니.

고통도 희열도 이 세상에 그저 지나가니

세상을 지나쳐라, 아무것도 아니니.

- 안와리, 「소헤이리」

 

 

 

 깃발과 화환이 달린 배, 축포, 조명, 북과 나팔, 환호와 외침 등은 모두 기쁨을 나타내는 간판, 암시, 상징과 같은 상형문자다. 하지만 기쁨 자체는 그곳에 없다. 오직 기쁨만이 축제 참석을 거절했다. 기쁨이 실제로 나타날 때는 초대도 없이 자기 스스로 거침없이 찾아온다. 종종 가장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일상 속에서 전혀 빛나지도 않고 영광스러운 자리도 아닌 곳에 슬그머니 나타나곤 한다.

 기쁨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금처럼 우연의 변덕스러움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거기에는 어떤 규칙이나 법칙도 없이, 보통 아주 작은 알갱이로만 존재하고 큰 덩어리로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앞서 언급한 모든 겉모습은 기쁨이 돌아왔다고 다른 사람이 믿게 하려는 목적을 수행 중이다.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보이는 모습이 중요하다.

 

 

 

왜 영원하지도 않은 것에

정신을 피로하게 만드는가?

 

 

quid aeternis minorem

Consiliis animum fatigas?

- 호라티우스

 

 

 

 일반적으로 인간은 방랑자 같은 삶을 산다. 방랑자가 앞으로 걸어가면 사물이 멀리서 볼 때와 다른 형태로 보이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변하는 모습이 특히 인간의 욕망과 비슷하다. 인간은 종종 자신이 원하던 것가 완전히 다른, 심지어 더 좋은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때로는 찾던 것을 그토록 찾아 헤매던 길이 아닌, 완전히 다른 길에서 발견하는 일도 있다. 더불어 빛 좋은 개살구에다 덧없는 향락, 행복, 기쁨을 추구하다가 그 대신 영원하고 참된 재화인 교훈, 통찰, 깨달음을 얻는 예도 있다.

 

 

 

배우는 일 외에는 아무런 행복도 느끼지 못한다.

Altro diletto, che 'mparar, non provo.

- 페트라르카(이탈리아의 시인, 학자, 인문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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